우래옥, 두근두근 평양 냉면 여행의 시작
우래옥, 냉면 박물관에서의 한 끼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주교동 창경궁로 62-29
전화번호 : 02-2265-0151
추천 메뉴: 평양냉면 (14,000) / 불고기 (35,000 ?!)
아마 여름이 오기 전에 미리 완성해버릴 평양냉면 도감.
웨이팅을 지독히 싫어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사실 면 킬러라 겨울에 냉면 먹는 것도 좋아함 ㅎㅎ
대학교 1학년 때 중국어를 가르쳐 주신 고마운 은사님께서 을밀대를 사주셨는데, 그게 내 평양냉면 기행의 시작이었다. 육쌈냉면이 전부였던 초딩입맛에 '심심한 국물 맛'이 추가된 사건.
들어가며
시작은 창대해야 하는 법이다. 가장 유명한 곳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몇 군데를 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딱 눈감고 10개만 돌아봐야지.
우래옥은 을지로 4가에 내리면 쉽게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차를 끌고 가도 되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보니 그냥 걸어오는 게 낫겠다 싶더라.
일부러 점심시간을 피해 갔음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앉아 계신 분들의 연세를 보아하니 맛은 걱정 없겠다 싶었다.
가게 분위기는 유럽에서 찾아간 대형 한식당의 분위기. 198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배가 고파 급하게 앉았는데, 앉고 나니 가게 곳곳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메뉴판부터 예사롭지 않다. 화성행차도가 생각나는 그림. 한자가 꽤 이쁘다. 또 오는 집.
메뉴판도 꽤나 특이한 재질이다. 뭔가 딱지 접으면 반들반들하게 잘 접힐 것 같은 디자인.
가장 첫 페이지에는 구이류가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불고기가 가장 유명한 것 같다. 불고기 가격이... 착하지는 않다..
1인분에 35,000원이다. 집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괜찮은 한우 ++ 가격과 맞먹는데, 과연 맛은?
냉면은 뭐니 뭐니 해도 물냉이라 생각해 과감히 물냉을 시켰다. 참고로 여기 물냉은 양이 참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물냉은 14,000원. 굳이 사리 추가는 필요 없는 이유가 따로 있다.
"에이 얼마나 많겠어?" 했는데,
정말 양이 많았다.
음료 메뉴판. 쥬 ㅡ 스에서 세월의 흔적을 작게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볼 법한 메뉴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래저래 냉면 박물관에 온 느낌.
음식들
서빙해주시는 분들의 짬이 장난이 아니다. 음식값에는 이 분들의 짬바도 포함되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정도. 필요한 순간에 알아서 오신다. 불 조절도 마찬가지.
가장 먼저 그릇에 담긴 소 불고기를 슥슥 올려주셨다. 지정 테이블 제는 아니지만, 필요할 타이밍에 와 눌어붙지 않게 슉슉 옮기고 가주신다.
그리고 늦지 않게 준비된 밑반찬과 면수.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밑반찬들이 인상적이다.
가장 먼저 취향저격을 당한 동치미. 식감도 매우 매우 아삭하며 적당히 매콤하며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맛이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속 마시게 됐다.
그리고 마신 면수. 깔끔했다. 점점 더 음식에 대한 기대가 올라가는 순간.
기대하고 기대하던 냉면이 나왔다. 딱 보면 알겠지만, 사리 양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식사량이 적은 사람에게는 다 먹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냉면 집에 오면 고명부터 조금씩 조금씩 먹어보는 편인데, 배가 몹시 맛있었다. 좋은 배를 쓰는 듯. 맛있는 배 특유의 단단함과 달콤함이 혀로 온전히 전해지는 맛이었다.
동시에 '고기 맛'이 배에서도 느껴지는 기분. 고기 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배도 조금은 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에게는 극호.
몹시 맛있었던 편육. 감질나게 1점 이렇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맛있게 먹었다.
씹을수록 고소함이 더 올라오는 놀라운 맛이었다.
같이 나온 배추도 무난무난. 역시나 여기서도 고기 맛이 느껴졌다.
슬슬 풀어서 국물을 딱 들이켜는 순간 바로 면을 먹어보고 싶어 졌다. 최근에 먹은 대구 고운 곰탕의 냉면 맛이 깔끔하게 망각되는 순간이다.
고운 곰탕도 꽤 진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래옥의 육수 맛을 먹어보니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면은 익숙한 평양냉면의 맛. 정말 '육쌈냉면'의 면과 대척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전혀 질긴 느낌이 없이 젓가락에 거는 대로 훌훌 넘어가는 맛. 소문대로 양이 많긴 하지만, 면돌이인 나에겐 한 그릇은 거뜬했다.
동시에 불고기도 완성됐다. 솔직히 맛만 놓고 보면 냉면보다는 불고기가 훨씬 더 맛있었다. 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과연 매 끼니마다 시킬 수 있는지는 잘...
여태껏 소불고기는 저렴한 부위를 양념 맛으로 먹는 고기라 생각했는데, 우래옥에서 완전히 생각이 뒤바뀌어버렸다. 특히나 논산 훈련소 앞 불고기로 점철되어있었던 대뇌가 깔끔히 세뇌되는 기분.
정말 맛있는 한우 소불고기였다. 타이어 소불고기와 또 대척점에 서 있는 고기. 좋은 고기와 자극적이지 않은 한국적인 양념의 조화는 훌륭했다.
고기 한 점을 먹고, 냉면을 한 젓가락 돌리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고기만 먹기에는 심심해 밑반찬으로 나온 영양부추와 한 점을 먹으니 또 다른 맛이 느껴졌다.
알싸한 매운맛이 일품인 영양부추. 실부추라고 부르기도 하나?
식사를 매우 만족스럽게 마치고 나온 후식 배. 근데 사진을 찍는다고 먹는 걸 까먹어버렸다. 흑흑
나가며
식사를 끝내고 매우 한적해진 가게를 한 바퀴 휘 둘러봤다. 이래저래 해외에서 방문한 대형 한식당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
2층까지 있는데, 아마 여름에는 2층도 가득 차겠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성냥 통도 있었고,
무엇보다 오늘 먹은 음식이 사연 가득한 '이북 음식'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가게 앞의 전시물들도 있었다.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놓인 물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의 사연을 간직한 물건들이 참 많다.
"이북 신문이 있구나... 1980년대의 문법은 이랬구나..."
냉면 박물관에서의 훌륭한 한 끼였다.
다른 평양냉면을 가더라도 계속 이데아로 남아있을 것 같은 '우래옥'이다.
진했던 맛은 차치하고, 건물 자체에서 느껴지는 아우라와 가게 곳곳에 놓인 '역사의 흔적'들은 쉽게 흉내 내지 못할 디테일인 듯.
사실 디테일을 의도하지 않은 물건들이라 역설적으로 더 깊은 디테일이 우러나오는지도?
상당히 만족했던 냉면 기행 첫 글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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