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 루팡, 다자이 오사무의 단골 바 [도쿄 맛집]
바 루팡 (Bar Lupin)
도쿄 여행은 밤에도 계속된다.
숙소로 잡은 긴자의 가장 큰 장점은 밤에도 별 걱정 없이 도쿄의 야경을 즐기며 돌아다닐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저녁을 먹고 유유자적 거리를 거닐다 보면, 많은 바와 이자카야를 마주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어둑어둑한 골목에 위치한 루팡은 도쿄의 역사를 간직한 꽤나 유서 깊은 공간이다.
루팡 가는 길
긴자 숙소의 장점 : 일본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곳을 내 집마냥 쏘다닐 수 있다는 것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었을까, 골목 안쪽에 있는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간판이 어렴풋이 보인다. 신비한 곳이다.
2018년 12월의 도쿄를 거닐고 있지만, 이 골목에서만큼은 1928년 12월이 느껴지는 듯하다.
수많은 일본 지식인들이 드나들었던 입구이다. 무려 1928년에 오픈한 곳으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낮에 맛집을 드나들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들었다.
<인간실격>을 쓴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즐겨 찾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문을 열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이미 이름만 남은 수많은 이들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가게 입구는 꽤 좁은 편이다. 바 오른쪽에는 칵테일을 만드는 멋진 노신사가 계시며, 멋쟁이 할머니들도 계신다. 이곳은 가게의 세월만큼 연륜이 있으신 종업원들이 모든 것을 담당하신다.
어쩌면 가장 일본스러운 곳일지도 모른다. 가게 내부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한쪽에서는 노래가 나오는 동시에 또 다른 한쪽에서는 색색의 칵테일이 만들어진다.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라 그런가, 입구에는 '자릿세'에 대한 안내가 각 나라의 언어로 붙어있다. 한국의 차림비 같은 개념인데, 1인당 몇백 엔을 지불해야 한다. 일본어로는 'チャージ料'(챠-지 료)라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지불할 용의가 있는 장소다. 1928년의 분위기를 또 어디 가서 느껴볼 수 있을까? 몇 백 엔의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숨은 긴자의 명소이다.
칵테일 메뉴는 꽤나 단촐하다. 세월만큼이나 단출하면서도 전통적인 칵테일만 판매한다. 찰리 채플린, 골든 피즈 등등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아주 탄탄한 메뉴들이다.
아, 기본 안주는 무려 '오이'다. 아버지랑 같이 가면 좋아하실 듯.
칵테일을 마시며 유유히 바 안을 둘러봤다.
멋지게 차려입은 오샤레 일본 아주머니들은 담배를 맛나게 피우며 술잔을 비우고 있었고, 카운터석에 앉은 중년의 노신사 2명은 미소를 지으며 여유 있게 바텐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루팡의 시간은 1980년 어딘가에서 멈춘 듯했다.
그렇게 홀린 듯 한참을 있다가 술잔을 비우고 가게를 나왔다. 자릿세와 술값을 합쳐 1,500엔 정도가 나왔지만 잠시 시간여행을 한 가격 치고는 꽤 저렴한 듯했다.
아, 이곳은 무조건 현금이다.
가게를 뒤로하고 나서려는 찰나, 미소짓는 종업원 할머니로부터 작은 선물을 받았다.
개업 90주년 선물이라며 주신 포스트잇.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끄적끄적
다시 2021년, 무려 2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서랍을 뒤져 2018년의 선물을 찾아냈다.
이 포스트잇을 받았을 때는 내가 음식 블로그를 할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사람일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커버를 열어보니 많지도 적지도 않은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한 장을 뜯어보았다.
블로그 이름을 한 자 한 자 써보았다. 문득 도쿄로 떠나고 싶어지는 밤이다.
나가며
www.tofugu.com/travel/bar-lupin/
영어로 된 사이트지만,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루팡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우연히 공식 사이트를 찾아버렸다. 자릿세가 무려 800엔이라니. 조금 오른 것 같다.
1990년대에 html과 css만으로 만든 듯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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